2011년 10월 28일
아라비안 데이 앤 나이트 - 에필로그
왠일인지 두바이에서 한국 오는 비행내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보통은 여정이 고되기 때문에 귀향길에는 잠을 쉬이 이루는데도 말이다. 한국에 거의 다달았을 때쯤 잠깐 졸았다가 '쿵'하고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건 마치 이 모든 꿈이 정말로 끝났다는 알람 같았다. 내 길고 달콤하고 조금은 고된 꿈.
우리의 체류일정 중 마지막을 장식한 삼일간의 교육일정은 정말로 질곡이 많았다. 우선은 회사가 요구한 '한국어 통역'은 예상외로 그 필요성에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쉽게 공감했을 것이라면 애초에 왜 통역이 없이 교육을 진행하려고 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물론 사버는 우리가 교육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여주기 행정'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통역은 이왕이면 남자로 구해줘~' 라고 말한 농담반 진담반의 내 부탁과는 달리 통역으로 불려온 한국인은 여성분이었다. 테헤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는 학생이었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로 미루어 보건데 그녀는 71년생이다. 하지만 통역을 구하는 건 가장 첫 미션일 뿐이었다. 여기 입사한지 3년이 넘어가는 나에게도 복잡한 기술적인 설명들을 문외한인 그녀가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녀는 셋탑박스가 뭔지도 모르는데!
첫날 염려스러운 마음 속에 잠든 나는 아잠이 떠난 호텔에서 가위에 눌렀다. 페르시아 언어로 (아마도) 방안에서 떠드는 남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사실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다음날 통역자의 출입허가가 우여곡절끝에 떨어지고, 아마도 운좋게 이스파한에서 출발한 인원들의 도착이 매우 늦어져 교육도 늦게 시작되었다. 내가 준비한 (시간 때우기용) 프레젠테이션은 그다지 Excellent 하지는 않았지만 Not bad 한 수준에서 정리되었다. 문제는 본격적 기술 세션에서 시작되었다. 현지 스태프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귀엣말로 '저건 재앙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통역 언니의 기분을 너무 슬프게 하지 않는 선에서 돌려보내는 방법이 있을지 나와 상의했다.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 잠시의 상의 끝에 통역의 자리는 비워졌고, 나와 미스터 사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영어, 한국어, 페르시아어가 뒤섞인 세션이었고, 나의 기분은 침체되어 갔다. 과연 우리 모두의 고생만큼 이 기술 세션이 가치가 있을까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하지만 3일간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나는 동료들의 열심과 성실에 굉장한 감동을 했고, 그 감동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교육 그 자체의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가에 대한 확신은 조금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동료들이 어떤 열의를 가지고 그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려 하느냐는 전해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시스템 최종 점검에 들어갔는데 세세한 테스트를 하려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작은 에러들이 발생했다. 그것은 분명 좋지 않은 징조였다. 결국 마지막 초에 이르러서까지도 시스템을 만지다가 갈 수 밖에 없었다. 호텔로 가방을 가지러 갈 때, 아라쉬는 '이 길도 이제 마지막이네. 나는 이제 바로 집으로 퇴근하겠지. 담배도 혼자 피러 가야하고. 매일이 아주 따분해질거야.' 라고 말했다. 한달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꽤 오랜 시간이었다. '이제 주말에도 쉴수 있고 좋잖아. 잘 된 일이라니까. 언젠가 서울에서 만날 날을 기다릴게.' 라고 말할 수 밖엔.
기진맥진한 우리는 공항에 가는 택시를 탔다. 테헤란을 떠나는 일이, 그 먼일처럼 느껴지던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왠지 우리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말이 없었다. 노을의 색깔은 아름다웠고, 본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지나치며 아마도 마지막이 될 테헤란 도로의 카오스를 보며 조금 웃었다. 테헤란 공항에서 사먹은 조각케익의 맛은 솔직히 제빵학원 수강생의 첫작품같았지만 오랫만의 라떼는 좋았다. 옆자리 승객은 두바이에 사업을 하러 가는 아저씨였는데 나의 귀국을 축하하며 '홈 스윗홈'을 찬미했다. 두바이에서는 목적했던 낙타를 샀고, 그 외에는 기운이 없어 살수가 없었다. 한국까지의 비행은 역시 길었다.
집에 가는 공항버스에서 맞은편 버스에 탄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내게 일말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시선을 회피했다. 순간 나는 '아 저 여자는 왜 나한테 별 관심이 없지? 엄청 쿨하네.'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그래! 나는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내 나라에 돌아왔다. 길을 걸어도 아무도 나를 원숭이처럼 관찰하지 않는 그곳으로! 거지꼴을 하고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집은 여전했다. 체중계에 올라가보니 마지막으로 쟀을 때보다 2킬로가 빠져있었다. 나는 그것이 테헤란에 두고 온 내 심장의 무게가 아닐까 생각했다.
# by | 2011/10/28 14:52 | 바쁜 토끼를 좇던 나날들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