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데이 앤 나이트 - 에필로그

왠일인지 두바이에서 한국 오는 비행내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보통은 여정이 고되기 때문에 귀향길에는 잠을 쉬이 이루는데도 말이다. 한국에 거의 다달았을 때쯤 잠깐 졸았다가 '쿵'하고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건 마치 이 모든 꿈이 정말로 끝났다는 알람 같았다. 내 길고 달콤하고 조금은 고된 꿈. 


우리의 체류일정 중 마지막을 장식한 삼일간의 교육일정은 정말로 질곡이 많았다. 우선은 회사가 요구한 '한국어 통역'은 예상외로 그 필요성에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쉽게 공감했을 것이라면 애초에 왜 통역이 없이 교육을 진행하려고 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물론 사버는 우리가 교육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여주기 행정'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통역은 이왕이면 남자로 구해줘~' 라고 말한 농담반 진담반의 내 부탁과는 달리 통역으로 불려온 한국인은 여성분이었다. 테헤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는 학생이었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로 미루어 보건데 그녀는 71년생이다. 하지만 통역을 구하는 건 가장 첫 미션일 뿐이었다. 여기 입사한지 3년이 넘어가는 나에게도 복잡한 기술적인 설명들을 문외한인 그녀가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녀는 셋탑박스가 뭔지도 모르는데!

첫날 염려스러운 마음 속에 잠든 나는 아잠이 떠난 호텔에서 가위에 눌렀다. 페르시아 언어로 (아마도) 방안에서 떠드는 남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사실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다음날 통역자의 출입허가가 우여곡절끝에 떨어지고, 아마도 운좋게 이스파한에서 출발한 인원들의 도착이 매우 늦어져 교육도 늦게 시작되었다. 내가 준비한 (시간 때우기용) 프레젠테이션은 그다지 Excellent 하지는 않았지만 Not bad 한 수준에서 정리되었다. 문제는 본격적 기술 세션에서 시작되었다. 현지 스태프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귀엣말로 '저건 재앙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통역 언니의 기분을 너무 슬프게 하지 않는 선에서 돌려보내는 방법이 있을지 나와 상의했다.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 잠시의 상의 끝에 통역의 자리는 비워졌고, 나와 미스터 사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영어, 한국어, 페르시아어가 뒤섞인 세션이었고, 나의 기분은 침체되어 갔다. 과연 우리 모두의 고생만큼 이 기술 세션이 가치가 있을까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하지만 3일간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나는 동료들의 열심과 성실에 굉장한 감동을 했고, 그 감동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교육 그 자체의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가에 대한 확신은 조금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동료들이 어떤 열의를 가지고 그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려 하느냐는 전해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시스템 최종 점검에 들어갔는데 세세한 테스트를 하려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작은 에러들이 발생했다. 그것은 분명 좋지 않은 징조였다. 결국 마지막 초에 이르러서까지도 시스템을 만지다가 갈 수 밖에 없었다. 호텔로 가방을 가지러 갈 때, 아라쉬는 '이 길도 이제 마지막이네. 나는 이제 바로 집으로 퇴근하겠지. 담배도 혼자 피러 가야하고. 매일이 아주 따분해질거야.' 라고 말했다. 한달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꽤 오랜 시간이었다. '이제 주말에도 쉴수 있고 좋잖아. 잘 된 일이라니까. 언젠가 서울에서 만날 날을 기다릴게.' 라고 말할 수 밖엔.

기진맥진한 우리는 공항에 가는 택시를 탔다. 테헤란을 떠나는 일이, 그 먼일처럼 느껴지던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왠지 우리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말이 없었다. 노을의 색깔은 아름다웠고, 본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지나치며 아마도 마지막이 될 테헤란 도로의 카오스를 보며 조금 웃었다. 테헤란 공항에서 사먹은 조각케익의 맛은 솔직히 제빵학원 수강생의 첫작품같았지만 오랫만의 라떼는 좋았다. 옆자리 승객은 두바이에 사업을 하러 가는 아저씨였는데 나의 귀국을 축하하며 '홈 스윗홈'을 찬미했다. 두바이에서는 목적했던 낙타를 샀고, 그 외에는 기운이 없어 살수가 없었다. 한국까지의 비행은 역시 길었다. 

집에 가는 공항버스에서 맞은편 버스에 탄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내게 일말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시선을 회피했다. 순간 나는 '아 저 여자는 왜 나한테 별 관심이 없지? 엄청 쿨하네.'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그래! 나는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내 나라에 돌아왔다. 길을 걸어도 아무도 나를 원숭이처럼 관찰하지 않는 그곳으로! 거지꼴을 하고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집은 여전했다. 체중계에 올라가보니 마지막으로 쟀을 때보다 2킬로가 빠져있었다. 나는 그것이 테헤란에 두고 온 내 심장의 무게가 아닐까 생각했다. 



by 파루 | 2011/10/28 14:52 | 바쁜 토끼를 좇던 나날들 | 트랙백 | 덧글(0)

아라비안 데이 앤 나이트 - 에피소드

- 우리를 돌봐주며 우리의 편한 모습을 본 아잠은 어느날 은밀하게 '이건 물어보기 좀 부끄러운데 원래 한국 남자들은 제모를 안하니?' 라고 물었다. 퇴근하고 민소매를 입은 한국 남자들을 본 그녀는 팔사이에 무성한 털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이란 남자들은 원래 겨드랑이와 치부를 제모한단다. 그러면서 '오 난 한국남자와 결혼하는 걸 포기해야겠어. 만약 제모안한 그걸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disgusting해.'라면서 치를 떨었다. 크하하하하. 근데 한편 내가 목격한 여러 이란 남자들의 무성한 가슴털과 팔털을 생각하면 과연 그네들의 제모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가 좀 의문이었다.

- 두번째인가의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잠은 '다들 너의 요리를 숭배하고 있어.'라며 말했다. '응 그들은 지금 한국요리에 너무 주려있어서야.' 라고 대답하자. '특히 Kim 말이야. 우와. 우와. (그분의 흉내. 아주 비슷했다.) 하면서 말이야. 사실 지난 저녁에 나는 그가 음식이랑 섹스라도 하는 줄 알았어.' 크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빵터졌다. '그건 그가 혼자 살기 때문이야. 대단치도 않은 요리를 한국에 살때도 잘 못해먹으니까.' 그랬더니 갑자기 아잠이 시무룩해지면서 '니 대답을 들으니까 그를 비꼰게 죄책감이 느껴져.' 하고 말했다. 

- 한국의 쪽지 접는 법을 나의 이란인 친구들은 아무도 몰랐다. 내가 쪽지를 건내자.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리본?'이라고 물었다. 나의 테디베어 나비드는 내 앞에서 내 쪽지를 읽었는데 좋아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수 있어서 기뻤다. 얼굴 표정을 보면 '흠 지금쯤 무슨 말을 읽고 있겠군' 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나중에 '완전 고마워. 이거 하나로 모두 보상 받은 것 같아. 꼭 답장을 쓸게. 편지로 쓰면 훨씬 잘 표현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대답한 그는 다음날 열심히 사전을 찾아가면서 답장을 써줬다. 나의 테디베어는 글씨는 못썼다. 그리고 내가 쪽지 구분을 하기 위해 귀퉁이에 그려놓은 곰발 그림을 자기 쪽지에다 그려달라고 했다. 

- 아라쉬의 반응은 조금 달랐는데 내 쪽지를 받자마자 마치 '새벽에 물레방앗간에서 만나자'는 연통이라도 받은 듯 사무실 구석에 가서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는 아주 많이 감동을 했다며 답장을 쓰겠다고 했다. 트레이닝 세션 중간에 내 쪽지를 가지고 구글 트랜슬레이터로 뭔가 탐색을 시작했다. 내가 카톡으로 '내 편지 연구하니? 내 글씨가 그렇게 구려?'라고 묻자 열심히 찾던 부분을 나에게 들이밀었는데, 내가 문법 교정을 위해 첨가한 'be/a/good'을 띄어쓰기가 없는채로 찾고 있는 것이었다. ㅋㅋㅋ 그는 그러다가 마지막날 오늘 아침에 답장을 하려하다가 못썼다며 이메일로 답장을 하겠다고 했다. 내가 카톡으로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어제부터 오늘까지 니 편지를 백번쯤 읽었어.' 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답장은 없다.

by 파루 | 2011/10/08 00:34 | 바쁜 토끼를 좇던 나날들 | 트랙백 | 덧글(0)

아라비안 데이앤나이트 - 세통의 편지

언젠가 내게 누군가를 매혹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노래를 불러주고, 편지를 쓰고, 대화를 해보겠다.'고 말한 적이있다. 아마 그 셋이 다 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나를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 체류 기간 동안 만난 나의 순수한 이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들과의 마지막 날이 다가 오면 나는 편지를 썼다. 대충 기억하는 편지, 내게도 남긴다.

- 아잠에게 - 
나는 가끔 천국을 상상해. 천국은 죽은 후에 가는 어떤 공간이 아니고, 밤에 꾸는 꿈처럼 나의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을 반복해서 살 수 있는 것이지. 인생에서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은 뛰어넘고 편집해버리고 말이야. 내가 너와의 이 시간들을 편집한다면 나는 이 순간들을 좀 더 다채로운 색깔과 신나는 음악과 함께하도록 만들거야. 우리는 아마 우리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솔직하고 다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테헤란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아잠 너(와 나의 테디베어)야. 다행히 우리는 둘다 인터넷  중독이니까 서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남에게 쏟는 너의 에너지를 조금 축적했다가 너만을 위해 쓰도록 해. 너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우리가 영영 다시 볼 수 없다고 해도, 언제나 나의 친구가 되어 주길. 사랑하는 진주가.


-나의 젊고, 기쁘고, 아름다운 거짓말쟁이 아라쉬에게-
안녕 내 가짜 약혼자. 초고속 인터넷과 결혼에 관한 우리의 농담이 완벽했고, 니가 말한 너의 장점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어. 근데 수많은 '안되는' 이유들이 나를 공격해와서, 결국에 나는 눈물로 너를 포기하고 말았지. ㅎㅎ. 어제 밤에 너의 구글 플러스에서 너의 사진을 보았어. 너는 더 어렸고. 니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어서 나는 거의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어. 아마 그 사진 속 소년처럼 너는 내 기억속에 영원히 23살짜리 소년일거야. 나이를 먹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데도 닿을 수가 없고, 여러가지 이유로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 아마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이 우리가 가질 유일한 시간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너는 너의 부모님 처럼 멋진 어른이 될거야. 부디 니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니가 원하는 곳에 있길. 만약 한국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내게 너를 대접할 기회를 줘. 한국의 가정식 요리를 해줄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반주, 너도 좋아하게 될게 확실해. 안녕 아라쉬. 니가 그리울거야. 진주.


- 나의 테디베어 나비드에게-
안녕 가짜 마리아. 나야 진주, 너의 은밀한 숭배자. 너는 아마 아잠과 내가 너를 테디베어라고 부르고 있는걸 이미 알고 있겠지? 내가 아잠에게 '나비드는 너무 귀여워. 완전 테디베어 같아.' 라고 말하니까 아잠이 너무 좋아했고, 우리는 그대로 너를 테디베어라고 부르기로 했어. 사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비밀도 아니야. 우리 팀원들은 다 아는걸? 그건 공공연한 사실이야. 근데 너무 쫄지는마. 그건 '난 니가 필요해. 결혼해줘.'같은 종류의 사랑은 아니거든. 우리 팀원들은 다들 너를 너무 사랑해. 이제 나는 니가 나의 테디베어가 아니란걸 알아. 너는 이란제 빅베어야. 나는 너를 내 캐리어로 납치하려는 계획을 포기했어. 내 옷도 다 버리고, 추가 차지도 낼 각오였는데 말야. 어쨌든 너는 다정하고, 똑똑하고, 일도 열심히하니까 니 사랑은 곧 이루어질거야. (그 여자가 바보가 아니라면.) 일도 공부도 잘되길 바랄게. 그리고 너에게 딱 맞는 예쁘고 상냥한 암컷곰을 찾기를. 한국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내 손님으로 와줘.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언제나 내 축복이 너와 함께 할거야. 안녕 나의 이란제 테디베어. 부디 행복한 삶이 되길. 진주.


by 파루 | 2011/10/07 00:07 | 바쁜 토끼를 좇던 나날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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